차령산맥 줄기에 자리잡은 충청남도 공주. 계룡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정기로 유명한 이 지역을 이름나게 한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밤(栗)이다. 공주는 전체 면적의 70.4%가 임야다. 때문에 지역 농가에서는 예부터 이를 이용한 소득에 관심을 가져왔고, 밤이 지역 특산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공주에서 생산되는 밤이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할 정도. 공주 일대는 밤나무의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이 형성되어 당도가 높고 고소한 맛을 내는 밤으로 유명하다. 밤은 포도당, 단백질, 비타민A, B1, B2 등의 영양분과 인체에 필요한 무기질이 풍부하여 강장식품으로 인기 있을 뿐 아니라, 녹말이나 당질을 잘 분해시켜 주는 비타민 B1의 함량이 높아 피로회복, 감기예방 및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 맛과 영양에서 팔방미인인 밤. 공주는 물론, 전국에서 유일하게 친환경농법으로 밤을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 명율회를 찾았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나지막한 산세. 낮게 자리잡은 언덕과 구릉에 들어선 나무 역시 눈높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밤으로 유명한 지방 공주.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들 역시 온통 아담한 밤나무뿐이다. 전국에서 생산·유통되는 밤의 20%가 공주산(産)이라는 이야기는 굳이 우리나라 밤의 원산지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공주 밤의 명성을 말해준다.
엄청난 생산량과 뛰어난 품질로 사랑받는 공주 밤. 특히 영농조합법인 ‘명율회’는 공주 밤의 명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이다. 6년 전부터 시작된 친환경농법과 이를 통해 생산된 밤이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율회는 충남 지역은 물론이고 국내 최초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농약 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병충해의 피해가 많은 밤나무의 특성상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거리. 명율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생산과 유통 설비까지 완벽히 갖춰 GAP(친환경 관리제도) 인증까지 받았다.
명율회는 공주시 의당면 일대에서 밤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영농조합법인이다. 처음 조합이 발족되던 6년 전에는 네 가구가 힘을 모았지만, 현재는 정회원 열한 명에 준회원까지 합해 삼십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재배 면적도 총 200ha(60만 평)에 이르고 있고 1000평에 120그루를 기준으로 밤을 재배하고 있다.
전국 최초·유일의 무농약 인증 밤밤은 다른 작물에 비해 사람의 손이 훨씬 많이 가는 작물이다. 바꿔 말하면 병충해나 질병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품질은 그에 반비례하게 돼 있다.
“처음엔 저농약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년 만에 무농약 인증을 받았죠. 친환경 농법으로 밤을 재배하는 곳은 전국에서 명율회가 유일합니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일절 쓰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밤을 생산하고 있죠.”
명율회 조무웅 대표는 조합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뼈를 깎는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농약 사용이 당연시되던 작물에 그 동안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친환경 농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밤 보존에 필수라 여겨지던 훈증 과정도 거치지 않아 안심하고 드실 수 있습니다. 다량의 미생물 퇴비와 맛을 낼 수 있는 각종 고급 영양제를 사용해 밤 본래의 맛과 영양을 찾은 거죠.”
조 대표가 인고의 세월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밤의 친환경 재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밤은 다른 작물들과는 달리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수확을 거둘 때까지의 모든 과정에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밤나무 밑동에 페인트를 칠해 해충을 방제하는 과정, 나무마다 목초액 타르를 매달아 해충의 접근을 막는 방법 역시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일들이다. 또한 인칼균, 목초액 칼슘, 일라이트 등 살충살균 효과가 높은 약제와 영양제를 집중 사용해 병충해를 막기도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벌레라도 먹는 일이 생기면, 일일이 상처 부위를 긁어낸 후 약품처리를 하게 된다.
“사람도 기초적인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돼야 병 없이 살 수 있듯이, 밤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천연 퇴비를 사용하고, 농약 한 번 뿌리는 대신 한 그루 한 그루 관리하는 건 나무의 기본적인 생장력을 높이기 위함이죠. 그래야 병충해에 견딜 수 있는 내구력이 생기는 겁니다.”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밤은 ‘햇빛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밤 생산은 기술이 20%고, 밤나무 사랑이 80%’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기울여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뜻. 명율회 농민들이 힘을 합쳐 생산한 밤은 그 노력에 부응해 영양과 맛에서 일반 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을 자랑한다.
우선 당도 면에서 일반 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이 명율회의 자랑. 또한 일반적인 방식으로 재배된 밤에 비해 아삭아삭하게 깨무는 식감과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
유통과 보존 과정에서도 명율 밤은 다른 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보존 과정에서 필수로 여겨지던 ‘훈증’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수확한 밤을 적정한 수준의 농약으로 소독하는 과정이 바로 훈증이다.
“막 수확한 햇밤에는 밤바구미가 유충 단계에 있기 때문에 훈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몸에 해로운 약품이 겉껍질은 물론이고 열매 내부에까지 스며든단 뜻이죠. 훈증을 한 밤은 밑에 거친 부분이 새까매져요. 하지만 명율 밤은 이런 과정이 일절 없이, 수확한 직후 바로 냉장 보관할 수 있습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 공주출장소 이광구 소장은 “대부분의 밤 농가에서 훈증을 하고 있는데, 반드시 교육과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강도 높은 약품 처리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밤을 생산하는 데 있어 농약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명율회 회원들의 연령이 거의 대부분 60대 이상입니다. 올해 여든다섯으로 밤 농사만 40년을 지어온 분도 계시죠. 하지만 이분들이야말로 꿈을 이뤄가는 청년들입니다. 무농약 밤 재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내년부터는 유기농산물로 전환할 예정친환경 농법으로 무농약 인증을 받아 생산된 국내 유일의 밤. 명율회에서 생산된 밤은 평균 중량 28g, 최대 50g에 이를 정도로 튼실한 것이 특징이다. 가격은 특대 상품의 경우 kg당 7000원으로 일반 시세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편. 하지만 병충해관리부터 잡초 제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배 과정에 수작업을 거쳐야 하고, 나무도 듬성듬성 심기 때문에 수익이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다.
“한 그루당 수확량이 일반 재배의 80% 수준이에요. 아무래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수확량이 줄 수밖에 없죠. 재배 면적당 심은 그루 수도 적은 편이에요. 사람의 손이 많이 가다보니 빽빽하게 키우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월등한 맛과 당도, 영양으로 제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판매가가 조금 오르는 거죠.”
명율회 정회원 중 한 명인 명진농원 신명순 씨는 “해마다 풍년이지만, 현재까지 명율회 조합원들이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고 있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재배 과정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들고, 인건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GAP 인증을 위해 마련한 유통 시설 투자비도 만만치 않게 투자됐다. 세척부터 분류, 포장까지 모두 자동화된 설비는 명율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조그만 흠집이라도 난 밤을 과감히 제거하고 나면 지하수로 일차 세척과정을 거친다. 깨끗한 분사시스템으로 다시 한 번 세척하고 나면, 밤 크기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된다. 분류된 밤은 다시 포장과정을 거쳐 영하 2℃ 창고에 냉장 보관된다.
밤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친환경농산물로 인정받은 명율회. 올해부터는 처음으로 생산이력제도를 시행해 홈페이지(www.62albam.com)에 재배 과정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건강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다. 조무웅 대표는 “내년에는 무농약이 아닌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3분의1 이하로 사용한다’는 현재의 규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화학비료조차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 이렇게 되면 야생으로 자란 밤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로 친환경농산물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유기농산물은 완전한 자연친화 제품입니다. 인증을 받지 않았을 뿐, 이미 몇몇 회원들은 시험 삼아 유기재배를 시행하고 있죠. 유박(유기질 비료)과 퇴비만 사용하는 농장을 내년에는 11개로 늘릴 예정입니다.”
명율회의 또 다른 숙제는 판로 개척이다. 현재 무농약 유기농산물 전문업체인 ‘한살림’과 계약재배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직접 판매 비중을 늘려 갈 계획이다.
신토불이 국산 밤 고르는 요령밤은 탄닌과 전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이 함유돼 있는 영양의 보고다. 예부터도 구황작물로 이름을 얻었을 정도. 특히 밤에는 비타민 C가 많이 함유돼 있어 성장기 아이들의 발육과 피부미용, 감기예방 등에 효과가 뛰어나다. 밤의 원산지는 크게 한국과 중국, 유럽, 미국 등으로 나뉜다. 그중 가장 알이 굵고 영양 면에서도 월등한 것이 한국산 밤. 국산 밤은 일단 알이 크고 굵으며 윤기가 난다. 이에 비해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는 중국 밤은 알이 작고 윤택이 적으며 흙 같은 이물질도 많이 묻어 있다. 둥근 모양과 넓적한 것이 섞인 국산에 비해 중국산은 둥근 밤만 있는 것도 특징이다. 유럽과 미국산 밤도 알이 작으며, 속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고 식감도 무른 편이다.
재배는 물론 유통 설비까지 완벽히 갖춘 명율회의 밤. 무농약 농산물과 GAP 인증을 받은 전국 유일의 밤이다.
1 깨끗한 지하수로 두 번 세척한다.
2 크기별로 자동 분류돼 나오는 밤.
3 밤 재배는 열매를 맺을 때부터 수확까지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